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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각/에너지분야

환경용량속의 상식과 예측


 얼마 전 유례없는 전국 단위의 정전사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에너지의 공급과 수급구조가 허약한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었다. 

충분하고 넘치는 발전시설을 두고도 눈앞에서 벌어졌던 전력불통을 책임있는 당국은 묵묵하게 사태가 잊혀지기를 기다리는듯하다. 

통상 9월의 전력수요는 여름의 피크수요를 지나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한 전력회사들은 평상과 다름없이 많은 전력생산시설을 앞당겨 가동중단하고 연례보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름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특히 시스템에어콘의 전력수요는 지난 정전사태의 큰 원인으로 생각된다.

세계기상기구(WMO)의 사무총장은 “지금의 기후변화데이터는 앞으로의 기상을 예측하는데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라 했다. 이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리어 큰 장애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도 처음에 쓰나미의 정도가 10m라고 하다가, 얼마 후 다시 17m가 되고 다시 확인하니 27m까지 올라 갔었다. 이제 ‘기후의 역습’은 초속 68m의 초강풍을 동반한 슈퍼태풍까지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싸고 편리한 석유의 시대가 낳은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금 인류사가 직면한 문명사의 진실로 보인다. 석유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별되는 문명을 구가하는 듯 했다. 그리고 인간은 대량폐기와 그것에 연관된 또는 석유에 직접 관련된 대량의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율은 크게 잡아 26%를 넘지 않는다. 74%의 식량을 대외에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 땅의 거의 2배 이상의 다른 나라의 땅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목재 자급율이 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95%를 다른 나라의 나무를 쓰는 것이다. 

우리의 풍부한 물질생활을 위해 다른 나라의 강과 산과 들을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생적 의존이 전력의 수요예측보다도 훨씬 불안정한 것이다.

여기에 99%의 에너지의 대외수급구조에 자유롭게 의문조차도 정치의 의제가 되지 않는 이 시대는 중세의 어둠보다도 훨씬 무겁고 무지한 정의가 삶을 앞서고 있다고 보인다.

지난 2005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개인별 전기에너지 사용량은 영국을 넘어 독일을 넘어 초선진국형의 이미 소비구조를 형성하였다. 대형차의 비율은 일본의 거의3배에 이른다. 우리가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데 쓰는 에너지의 25%정도로 독일은 더 좋은 차를 만들고 있다. 

삼라만상의 운명은 생태학적인 질서에 종속되어있다. 생태학적인 환경용량은 ‘이명박대통령식의 녹색성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녹색’은 소통이고 협력이고 이해이며 지역의 발전을 말한다. 

좋은 가치이며, 21세기가 추구해야 할 가지이다. ‘성장’은 일방적이며, 서울중심이며, 지역의 틈입을 불허한다. ‘녹색성장’은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과 같은 의미처럼 불가능한 것이다. 

환경용량(environmantal capacity)속의 예측과 상식을 인정하는 리더십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예측하여야 한다. 지난번의 정전 그것은 이주 작은 해프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