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선과 시각/기후분야

"기후변화" 라는 단어는 변신중

(사)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기획위원장이시기도 하죠. 김용호 국제신문 기자님의 칼럼입니다.

현대사회에서 환경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문제는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본지는 환경 뉴스의 뒷이야기를 짚어보는 '김용호 기자의 환경 이야기'를 매주 연재합니다.


-MB정부는 '녹색성장'으로 포장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가운데 릭 샌토럼이라는 전 상원의원이 있습니다. 그는 최근 대선후보 경선 유세에서 "지구온난화는 기후 과학이 아니라 정치 과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회의론을 밑바탕에 깔고 하는 주장입니다. 미국 보수파 일각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해 유럽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려고 유포하는 이데올로기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도 적지 않은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적어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뜨거운 감자'가 틀림없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콜로라도 대학의 맥스웰 교수는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에 '오바마의 위험한 기후변화 수사법 변화'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맥스웰에 따르면 오바마는 이번 국정연설에서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겨우 한 번만 언급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인 계획(법)을 통과시키기에는 (민주 공화)양당의 견해차가 너무 크다"는 부분입니다. 지난해 국정연설에서는 아예 말하지 않았고, 2010년에도 두 차례 언급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인 이슈인 지구 온난화 문제를 피해간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 특히 '청정 에너지'란 단어를 20회 이상 말했습니다. 에너지 혁신을 위해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연구팀은 오바마 정부에서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청정 에너지'나 '에너지 독립'으로 서서히 대체돼 왔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이 기후변화나 온난화에 대한 용어선택에 극도로 신경을 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미국 공화당의 정치 전략가 프랭크 룬츠는 2002년 부시 행정부에서 기후에 대한 단어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온난화'대신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기후변화'가 '온난화'에 비해 덜 위협적이고, 더 객관적으로 보이며, 사태가 시급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이런 말장난의 이면에는 거대 석유자본의 로비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소모적인 논의, 정치적 수사가 판을 치는 중에도 온실가스는 계속 배출되고 있으며, 지구는 더 더워진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오바마의 연설처럼 온난화 대신 에너지 문제로 관점이 좁혀진다면 앞으로 정책의 방향이나 해결 방법이 애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후변화는 '녹색성장'으로 포장됐습니다. 이는 온난화 문제를 위기로 인식하기 보다 경제성장의 기회로 보게 합니다. 그러다보니 4대강 사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열리고, 유권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나은 정치집단을 또는 지도자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kyh73@kookje.co.kr